나에게는 한이 있다.

"어린애가 무슨 한이냐" 고 핀잔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잃어버린 여고시절에 대한 아쉬움이다.
 
인생에서 가장 꿈이 많은 여고시절을 골프 외엔 아무것도 모른 채 보냈기 때문이다.

그 흔한 미팅 한번 못해 보고 스물이 넘도록 남자 친구 한번 만나보지 못했다.

돈도 제대로 쓸 줄도 모르고 옷이라곤 골프웨어밖에 없었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 내 또래 여자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할 때가 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뒤에 남겨두고 온 느낌이다.

지난해 국내 대회에 참가하러 잠깐 귀국했을 때 모교인 공주 금성여고에서 성공한 선배라며 후배들과의 만남 시간을 가졌다.

단상에 올라 운동장에 가득 모인 학생들을 보니 내가 남겨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불현듯 깨닫게 됐다.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내게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습니다. 같이 손잡고 다닐 만한 친구도 없었고 좋아하는 선생님께 편지를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

고향에 와 후배들을 마주 대하니 감격스러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강 인사말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여고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좀 우울했다.

아버지는 내가 학생들 앞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다" 고 말한 것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말이 없으셨다.

당신 때문에 내가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자책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그런 것을 못느끼는 줄 알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시더니 "세리야, 이 아빠를 원망하니" 하고 물으셨다.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평생 상처가 될 말을 새겨놓은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팔을 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아요. 아쉬울 뿐이지 후회하지는 않아요. "

아버지는 "정말 미안하다, 세리야. 아빠가 너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구나" 하시며 눈가를 훔치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내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하신다.

그날은 처음으로 내 마음이 나약해진 것 같다.

그날 밤 나는 불꺼진 내 방 구석에서 한참 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골프 이외의 일로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날 큰일이 있었다.

연설을 마치고 의자에 앉자마자 학생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구름떼같이 몰려들어 압사할 뻔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미국땅을 밟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 이후 한가지 버릇이 생겼다.

갤러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해줄 때는 절대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며 사인을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국 갤러리들은 "언니!" 하며 달려들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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